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혁신가들이다. 아름다운가게, (사)아쇼카 한국, 카카오임팩트는 전폭적이지만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하고 경제적 지원과 연대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사회혁신가들이 바꾸는 세상을 함께 따라가봤다.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수급이 끊긴다고요?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 때문에 일도 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어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김윤지 비투비 대표는 “전국 150만 한 부모 가구 중 절반이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대다수 가구는 일을 하면 지원이 끊길까 봐 평생 일하지 않고 수급에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라고 전했다.

김윤지 비투비 대표. 그는 위기 부모 문제를 연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결해나가는 사회혁신가로 인정받아 카카오임팩트펠로우 2기에 선정됐다. / 사진 = 백선기 에디터
김윤지 비투비 대표. 그는 위기 부모 문제를 연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결해나가는 사회혁신가로 인정받아 카카오임팩트펠로우 2기에 선정됐다. / 사진 = 백선기 에디터

 

월급도 받고 지원금도 받고

비투비는 위기 부모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연결해 궁극적으로 자립을 돕는 비영리 단체다.

“무척 일하고 싶어 하는 19살 한 부모 가정의 자녀에게 취업을 연결시켜 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습니다. 알고 보니 딸이 일을 하면 지원금이 끊길까 봐 엄마가 출근을 막은 거예요. 그 이후에도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속출했어요. 처음엔 망연자실하고 당황스러웠는데 일련의 사건들이 자립을 위한 솔루션 옥토포수를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옥토포수는 생계급여를 받는 부모가 자신의 예상(희망) 월급을 기록하고 개인별 정보를 간단하게 입력하면 각종 지원금을 자동으로 더해서 예상 소득을 알려준다. 일하면서 월급도 받고 정부 지원금까지 더하니 현재 받는 기초생활수급보다 훨씬 높게 나온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국가에서 주는 수당이 6가지나 된다”면서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론 정보들을 찾기 어렵고, 알아도 정확히 계산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옥토포수 웹 화면. 옥토포수는 비옥한 땅에 씨를 뿌려 수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캐릭터는 문어로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옥토포수 웹 화면. 
옥토포수 웹 화면. 옥토포수는 비옥한 땅에 씨를 뿌려 수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캐릭터는 문어로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옥토포수 웹 화면. 

옥토포수는 단순히 정보제공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 상담을 통해 일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고, 한 부모 가족을 채용하고 싶어 하는 기업의 일자리를 연계해 홀로서기를 돕는다. 현재 비투비와 업무협약을 맺은 곳은 롯데피플네트웍스(구 롯데유통사업본부), 더화이트커뮤니케이션 등 2곳이고 네트워크로 엮인 기업은 4군데이다.

옥토포수는 지난해 11월 론칭한 이래 1851명의 사용자들이 방문했다. 정보 열람 횟수는 9600번 이상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2022.3.8 현재) 덕분에 한 20대 비혼모는 비투비에서 지원한 코딩 교육을 받고 스타트업에 취업했고 한 30대 비혼모는 CX(고객경험) 교육을 받고 해외 취업에 성공해 자립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옥토포수는 지원금 정보에서 취업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온라인이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옥토포수는 지원금 정보에서 취업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온라인이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우리의 전략은 뭐라도 해보려고 꿈틀대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힘을 실어줍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자들이 많아져 나무로 성장하고 이 나무들이 언젠가는 숲을 이뤄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길 바라는 거죠.”

 

30%라는 희망의 숫자

비투비의 첫 단추는 ‘베이비박스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김 대표는 2013년 베이비박스 기사를 읽고, 아이들이 버려진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교회로 달려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베이비박스. 지난 10년간 약 1800여 명의 아기들이 들어왔다. 베이비박스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운영중이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베이비박스. 지난 10년간 약 1800여 명의 아기들이 들어왔다. 베이비박스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운영중이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사회적으로 워낙 큰 이슈라 기자들이 교회에 매일 상주하다시피 했다”면서 “ 안타까운 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에 비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늘 이런 공식으로 끝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범죄를 저지른 부모들. 아기를 버린 무책임하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부모들.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니까 없어져야 한다. 아니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베이비박스는 존재해야 한다..’ 그 사이 아기는 해마다 더 들어옵니다. 전 굉장히 궁금했어요. 도대체 이 부모들은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일까?”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 512건의 상담 일지를 분석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청년 빈곤, 주거 부재, 가정 부재, 비혼 한 부모, 강간, 장애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2010 ~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들과 부모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 예시. 비투비의 모든 서비스는 데이터분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2010 ~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들과 부모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 예시. 비투비의 모든 서비스는 데이터분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무책임하다기보다는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어요. 예를 들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집단 강간을 당했습니다. 애를 낳았더니 구순구개열 장애를 갖고 태어났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 주변에는 도와줄 친척이나 부모도 없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0%의 부모가 아이를 다시 데려간다는 사실에서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아기를 버리는 부모들은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닙니다. 최후의 선택으로 베이비박스를 찾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아기랑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 있을지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전 이 점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그는 2018년 사단법인 비투비를 설립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부모들이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한 자원을 연결해주는 웹서비스 ‘품(PUUM)'을 내놓았다.

품(PUUM)은 정부와 민간 섹터의 자원을 통틀어 한곳에 모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각자 개인의 정보를 입력하면 맞춤형 정보를 처방해준다.
품(PUUM)은 정부와 민간 섹터의 자원을 통틀어 한곳에 모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각자 개인의 정보를 입력하면 맞춤형 정보를 처방해준다.

2020년 첫 선을 보인 ‘품(PUUM)’은 누적사용자 2.2만 명, 월 활성 사용자 1100명, 누적 페이지뷰 수 31만 뷰를 기록했다. 누군가는 품을 통해 생계비와 물품, 돌봄 지원을 받았고 이사 갈 집을 마련했다. 또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을 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성수동 사무실에 앉아서 작은 공 하나를 띄웠을 뿐인데 그 공이 인터넷이란 모세혈관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들에게 닿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비투비는 현재 아산사회복지재단과 후원자 170여 명의 도움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 지원 사업들은 대부분 인건비 지원이 안돼 좋은 인력을 충원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제 경우만 해도 몇 해를 월급 한 푼 없이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해가며 버텨냈어요. 밤새워 공익사업에 지원서를 내고 자원의 통로를 뚫어가며 지난해 처음으로 팀원 3명을 뽑았는데 그 후 큰 성과와 임팩트를 낼 수 있었죠. 사회문제는 절대 혼자 힘만으론 풀 수 없는 것 같아요.”

가족사진 촬영 지원 현장. 비투비는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식품 지원과 돌봄 지원, 유아용품, 가족사진 촬영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가족사진 촬영 지원 현장. 비투비는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식품 지원과 돌봄 지원, 유아용품, 가족사진 촬영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

김 대표는 “비혼모 가운데는 아이들 아빠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지만 이들 속에서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 저니맵(Journey map, 여정을 따라 기록하는 지도)을 그려가면서 서비스를 더 고도화 시켜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도왔는데 결국 아기랑 부모가 분리될 때면 허탈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씨앗이 돼 문제 해결의 수사망을 좁혀나가고 있습니다. 위기 단계별로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혹은 어떤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거나 넘쳐나는지를 찾아내 자원을 발굴하거나 재분배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내려고 합니다. 위기 부모들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을 자주 겪어요.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불우한 환경을 거쳐서 자랐고 대물림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부모 세대를 답습한다는 겁니다. 전 그 대물림을 끊어내고 싶어요.”

비투비 팀원들. 비투비는 데이터분석 위에  현장 경험을 더 얹어 위기 임신의 유형을 6가지로 도출해냈다. 이들은 유형별, 상황별로 필요한 자원의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 적절한 지원 방법을 모색한다.
비투비 팀원들. 비투비는 데이터분석 위에  현장 경험을 더 얹어 위기 임신의 유형을 6가지로 도출해냈다. 이들은 유형별, 상황별로 필요한 자원의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 적절한 지원 방법을 모색한다.

김윤지 대표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했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바마 캠프를 거쳐 플래시먼힐러드코리아 공공커뮤니케이션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는 여기에 하나 더 스토리텔러라는 새로운 소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대물림으로 늘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왔던 사회구성원들이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엄마가 비혼모였고 부모도 가정이 온전하지 않아 평생을 기초 생활수급에 매달려 의존해 살았어도 난 다르게 살수 있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래서 가슴 아픈 그 대물림을 끝내는 시작점이 비투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제공 = 비투비